전통시대의 중국문화는 공자의 유가사상을 중심으로 아시아의 주변국가들에 정치, 철학,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에 걸쳐서 영향을 미쳤으며, 불교와 도교 사상도 인접국가에 전파하고 영향을 주었다. 공산화된 중국에서는 전통적인 유가사상보다 문예활동을 인민에 봉사하고 사회주의 건설에 이바지하는 할 것을 방침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개혁·개방은 창작활동에서도 어느 정도의 자유를 허용하였다. 1982년 중국 정부는 문예사상의 ‘견지(堅持)와 발전(發展)’을 주장하고 작가는 4가지 기본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하여 작가들의 자유화 경향을 제어하였다. 즉 허용된 자유라는 것은 중국 공산당 체제 내에서의 자유이지 모든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은 아니었다. 1983년 사회주의 사상과 문화의 오염을 막는다는 명분의 정풍운동(整風運動)이 다시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바이화[白華]의 ‘오왕금과월오검(吳王金戈越五劍)’, 쉬징짜이[徐敬再]의 ‘굴기적시군(掘起的 試群)’이 비판되었다. 또한 1987년에는 류빈엔[劉賓雁]과 왕뤄왕[王若望]이 비판을 받고 당적을 잃었다. 톈안먼사건 이후에도 일부 작품들이 자산계급(資産階級) 자유화사상에 물들어 있어 당과 사회주의를 불신하고 있다고 비판되었다. 결국 중국의 문예활동은 정치적 면에 종속된 것으로 자유로움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자유에 대한 도전이 많아지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에 중국의 화단은 소련의 영향을 벗어나 서구의 화풍을 적극적으로 수입하면서 신사실주의(新事實主義), 전위예술 등의 여러 방면으로 모색하고 있다. 문화혁명 이후 서양음악은 가장 먼저 공격 대상이 되었다. 모든 음악작품은 공연이 금지되었고 정권이 지정하는 공연만 허용되었다. 그러나 개혁의 실행으로 인민들의 음악생활도 다채롭게 변모하였는데 특히 배우기가 쉽고 이해하기 쉬운 유행음악들이 급속히 퍼져나갔다. 최근에는 가라오케 노래방[歌廳]들이 대도시에 급증하고 있다. 또한 교향악 부문도 1980년대 중반 인민들 사이에 열풍적인 반응을 일으켜 매번 중앙악단의 공연 때 매진되는 일이 흔하였다. 또한 중국인은 중국 고유의 경극(京劇)을 즐기는데, 이 경극은 극본, 연기, 음악, 노래, 소도구, 분장, 의상 등의 예술적 요소를 다채롭게 결합한 총체적 예술로 사실적이기보다 상징적 원리에 의해 세련화된 예술이다. 이 역시 문화혁명 때에는 소련의 사실주의적 문예정책과 봉건주의적 잔재를 제거한다는 목표로 많은 부분이 변질되었지만 개혁 이후에는 문화혁명기에 금지당한 내용들이 다시 상연되고 표현면에서도 자유화가 이루어졌다. 중국에서는 태극권 등 기공수련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 아침에 단체로 기공체조를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불교와 도교 원리에 기공이 결합된 법륜공은 정치적인 목적을 띠고 있다는 이유로 중국 정부의 강한 탄압을 받고 있다. 스포츠면에서는 육상·체조 등에서도 세계 최고수준의 기량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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