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1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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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음성 운곡서원 (陰城 雲谷書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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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류 |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교육기관/ 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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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면적 | 1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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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등록)일 | 1990.1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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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재 지 | 충청북도 음성군 청용로365번길 22 (삼성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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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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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자(소유단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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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관리단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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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세 문 의 | 충청북도 음성군 문화공보과 043-871-30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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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운곡서원에 대한 설명입니다.조선 선조 35년(1602)에 충주목사 정구(鄭逑)가 이미 있던 백운서당에 주자를 모시고 백운서원이라 하였는데,현종 2년(1661)에 정구를 배향하고 운곡서원이라 하였다. 숙종 2년(1676) 나라에서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고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철거되었다. 고종 31년(1894)에 서원을 다시 지었는데,다음해 구 영정을 가져와서 봉안하였다.
교육 공간과 제사 공간으로 크게 나뉘는데,앞쪽 교육 공간에는 현재 주춧돌만 남아 있다. 그 뒤편의 제사 공간에는 ‘운곡서원’이라는 현판이 걸린 사당이 있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비록 규모는 작으나, 간결하고 소박하게 처리한 건축 양식에서 서원 건축의 한 특징을 볼 수 있다. 조선(朝鮮) 선조(宣祖) 35년(1602) 충주목사(忠州牧使)가 이미 있던 서원을 창설하였는데 현종 2년(1661)에 정구를 배향하고 운곡서원이라 한 것이다. 그 뒤 숙종 2년(1676)에 사액을 받았는데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 충주 감묘조에 ‘재현서백십리 지내면 사액 주자주향 정구배향(在縣西百十里 枝內面 賜額 朱子主享 鄭球配享)’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때 주자의 영정과 화상찬(畵像讚)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후 300년 가까이 이 지방의 유일한 교육기관으로 많은 인재를 배출해온 운곡서원은 고종 8년 서원 철폐령으로 폐원 되었는데, 1892년 지방유림에 의해 다시 단을 모아 제향 하였다. 고종 31년(1894)에 서원을 개건하고 이듬해 구 영정을 환안하여 복향하였다. 1963년 다시 중수되었으며 1974년 단청공사를 하여 아담하게 준공되었다. 비교적 규모는 적으나 간결하고 소박하게 처리한 건축양식에서 서원건축의 한 특징을 볼 수 있는 건물이다. 건물의 주위에는 토석혼축의 담장을 쌓고 건물의 중앙에 솟을 삼문을 세웠는데 경막각(景幕閣)이란 현판을 달았고 사우공간과 강당공간을 구분한 중문은 솟을 삼문으로 춘추문(春秋門)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이 서원 출신의 인물로는 의당(毅堂) 박세화 (朴世和) 선생 등이 있다.
느낌: 우리고장에 문화재가 있는것이 자랑스럽다
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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